한국사를 공부하면서 궁금한점

미필오수생 | 조회 수 296 | 2016.01.1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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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붕당이라는 개념이 왜 탄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붕당정치에 관한 수업을 들을때 선생님들이 하시는 말씀들중에


첫째, 공론중시 이로인하여 3사 언관과 이조정랑의 정치적 비중확대와 서원을 통한 중앙 정치 반영.

둘째, 서로 학문적 입장을 이해하는 가운데 상호 공존을 전제로 함.


이로 인해 조선사 개설에 나오는 조선정치에 대한 비판을 반박 할수있으며 과연 어느나라가 저 시절 이런 정치형태를 가지고 있었냐라고 하시던데

우리나라에서도 고려말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 조선초 개혁파와 온건파 조선 초중기 관학파와 사림파가 있었는데 ( 서원을 통한 중앙 정치반영은 아니지만 서원은 사림의 기반이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이조전랑이라는 자리가 어차피 지배층의 의견을 수렴하는것 이었고 옆나라였던 명 청, 일본의 에도막부도 지배층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나라를 운영해 나갔었고 그렇게 좋은제도였고 운영이 되었다면 후에 조일전쟁이나 병란같은건 왜 겪었는지 ... 솔직히 붕당정치라는 파트를 만들어서 따로 배우는 이유를 잘모르겠습니다.

두번째에 있던 상호 공존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는게 인조반정 이후 북인내 영창대군을 지지한 소북파를 제외한 광해군을 지지한 대북파들은 모조리 숙청되고 극히 일부만 유지되어 인조때 정치에 참여헀는데 이게 과연 상호공존을 지킨것인지도 의문입니다. 제가 위에 예시를 들었던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 , 개혁파와 온건파, 관학파와 사림파와 차이가 무엇일까요?


2. 광해군


첫째, 광해군의 중립외교도 궁금한데 중립외교 예를 들때 강홍립 사건을 예로 드는데 명조 연합군과 후금과의 전쟁에서

항복하라 지시를 했는데 병럭의 2/3를 잃었을까요??


둘째,대동법에 관해서도 실록을 인용하자면


광해 36권, 2년(1610 경술 / 명 만력(萬曆) 38년) 12월 25일 5번째기사
선혜청이 강원도의 공물을 경기도와 같이 쌀로 하기를 청하였으나 들어주지 않다

선혜청이, 강원도의 정공(正供)을 경기의 예에 따라 쌀로 하여 민폐를 제거하기를 청하였는데, 왕이 따르지 않았다. 이에 앞서 선혜청이 강원도 공물을 쌀로 하자는 뜻으로 아뢰었는데, 상이 특별히 거행하지 말라고 명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본청(本廳)이 재차 아뢰기를,

“삼가 강원도 정공을 쌀로 하자는 선혜청의 계목에 대한 재가를 보건대, 조종(祖宗)의 전장(典章)을 준수하여 단지 큰 폐단만을 제거하려는 훌륭한 뜻이 극진하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신들 또한 힘써 변경하여 작은 은혜나 베풀고 큰 근본은 망각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조종조에 토질의 형편에 맞추어 공물을 거두었던 법이 지극히 훌륭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법이 만들어진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폐단이 생겨났습니다. 사주인(私主人)이 중간에서 이를 빌미로 교활한 짓을 하여 본색의 수납 때에 으레 불합격 판정을 내려 미포(米布)로 충급(充給)하니,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된 것입니다. 이것은 조종이 법을 세운 본래의 뜻이 한번 변하여 사주인의 병폐가 된 것입니다. 《대전》의 방납(防納)을 금하는 조항에 ‘공물을 방납하는 자의 경우, 조정의 관리는 영구히 서용하지 않고, 서인은 전 가족을 변방으로 이주시킨다.’ 하였으니, 그 법이 엄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방납보다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곳은 없으므로 이익을 추구하는 무리가 각 고을의 미포를 직접 가서 받아가지고 본색을 대납하며, 또 스스로 납공하기를 꺼려하여 본사(本司)의 하리(下吏)에게 공물가(貢物價)를 나누어 주고서 관에 납공하게 합니다. 이것은 조종이 법을 세운 본래의 뜻이 재차 변하여 방납인의 폐단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성에게서 공물가로 나온 미포 가운데 10분의 5, 6은 방납인의 손에 들어가고, 10분의 3, 4는 사주인의 손으로 들어가고 그 나머지 10분의 1, 2가 국용(國用)에 충당됩니다. 백성에게서 한도 없이 나온 것을 모두 이익의 소굴에다 탕진해 버려, 백성들은 나날이 곤궁해지고 나라는 나날이 가난해지니, 고금 천하 어디에 이런 이치가 있겠습니까. 특히 두드러진 폐단을 들어 말해 보면, 장원서의 과실은 공물로 바치도록 되어 있는 것인데, 본서(本署)의 하리들이 산지(産地)와 밀통하여 사들여 놓았다가 납공에 응하는 바람에 배 1개의 값이 면포 1필이며 은행 1말의 값이 정미(正米) 80말이 되었습니다. 이 한 가지 일만 보아도 백성들이 공물에 해를 입어 안심하고 살아가지 못하는 실상을 알 수 있습니다.


경기도외 타지역으로 대동법이 확대되는것을 반대했던 광해군에게 대동법의 모든공을 돌리고 있더군요;;


그리고 어디서 주워 들어서 진위파악이 안되는데 임진왜란 전 후금은 명과 조선이 교역을 해주지 않고 가뭄까지 겹치면서 천도를 2~3번이나 하면서

망하기 일보직전에 임란이 터지고 명이 쇠퇴기를 겪고 있을때 성장했고 후에 어차피 중원을 먹기 전에 뒷문단속을 철저히 해야하기 때문에 조선을 침략하는건 당연했고 또 식량도 필요했기때문에 침략할 이유가 있었다라고 누군가 하더군요 사실파악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말갈 여진 외 북방민족의 역사도 저희역사로 편입시킬 필요가있지 않을까요? 고구려 발해때는 한 국가에서 같이 살기도했고 후에 중국이 분열될때 만주땅일 되찾을 명분이 있으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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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도리 at 2016.01.19. 00:13
좋은 글인데 제가 지금 모바일이라 긴 글을 담을 수가 없어 애석하군요ㅠ

붕당은 쉽게 말해서 "배운 놈은 많은데 밥그릇이 적어서"생긴 싸움이라고 보면 됩니다.

요즘 시즌에 흔히 보이는 "공천"경쟁과 사실상 다를 게 없죠...

그렇다고 해서 붕당이 의미가 없느냐면 그건 또 아닙니다.

서유럽을 예로 들어봅시다.
앙시엥 레짐이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부르주아vs귀족의 대립구도와, 영국의 양당제 대립구조 중,
무엇이 더 견제와 균형을 이룬다고 보시나요? 과연 전자가 의미있는 견제일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저 둘의 싸움은 제로섬 게임이니까요.
그래서 공존이 불가합니다. 마치 권문세족과 신진 사대부처럼 말이죠.

근데 붕당은 최소한 "공존"은 가능했다는 거죠. 일단은 둘 다 같은 놈들이니까요.
이게 이전까지의 정치와 다른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귀족정치와의 작별도 하였구요.

그리고 저 역시 한때 말갈,선비,돌궐 등의 북방민족의 역사도 한국사의 일부로 다루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없진 않습니다만...이건 아무래도 좀 민족주의적 사고지 않을까 싶네요ㅠ

이런 식으로 나와버리면 중국식 역사관과 다를 게 없어지기도(..)합니다만, 그건 둘째치고서..
과연 우리가 한때 이들을 지배(? 과연 발해가 극소수의 고구려인이었는데 말갈을 "지배"했다는 것이 객관적인지도 의문)했다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네요ㅠ
요나 원 입장에서 저희가 그쪽역사에 편입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게 돼버려서리;;
미필오수생 at 2016.01.19. 00:21

같은놈들이라.. 신진사대부안에서 관학파와 사림이 나온것이고 그 사림이 분열된게 동인 서인인데 이 둘차이는 뭐라고 볼까요??

 

그리고 공존이 가능했다라 관학파들도 성리학을 공부하던 사대부였고(물론 부국강병을 더 우선시 했지만)

너무 당파성론이라는 개념에 매달려서 하나의 파트로 만들었다는 생각밖에 안들어서요.. 또 예송논쟁에 관해서 효종의 정당성 문제 인정합니다 근데

 

그 당시 조선에 경신대기근이 발생하여 백성들이 다 죽어나가고있는데 에송에만 목매달고있었던 그 당시 지배층들에게도 시대상 어쩔수없었다라는 말로 넘어갈수있을까요? 그렇게 역사를 바라본다면 후에 나치에 대해서도 막대한 전쟁배상금과 하이퍼인플레이션 그 당시 독일의 나치화는 어쩔수없는 선택이다 라는 논리까지 넓혀질수있지 않을까싶네요.

 

조선 물론 성종때까지 좋은나라였고 괜찮았지만 그 이후 사림 집권기부터 쇠퇴기로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입장으로서 (물론 훈구들이 잘했다는건 아닙니다) 한 나라의 역사를 배울때 성장기때 잘한점과 쇠퇴기때 왜 망했는지에 대해 설명해주고

 

그로 인해 배워나가면서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가야할지 판단할수있고 또 미래를 예측할수있는 힘을 길러주는게 역사 교육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지금 공부하고있는 한국사는 너무 정신승리 조상 감싸주기로 밖에 안보이네요... 한국사라는 과목 특성상 애국심 고취는 어쩔수없다고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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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도리 at 2016.01.19. 00:32
정신승리 조상 감싸주기 맞아요. 일단 지갑 열어서 화폐에 그려진 인물들만 봐도 견적이 나오죠..

단순히 실학 찍 설명하고 넘어갈 게 아니라..기존 성리학자들이 얼마나 뜬구름잡는 이야기 한다고 나라를 거하게 말아드셨는지를 꼬집어 줘야 하는데..

이 부분은 apoc 님께 바통 넘기겠습니다. 이전에 아재께서 서방 전문 여행가가 보고 쓴 구한말 조선 이야기 링크 거신 적이 있는데, 한번 보시면 도움될 듯합니다.

사실 엄밀히 따져서 같은 놈들끼리 나온 거라고 보긴 좀 어폐가 있죠. (여기서 조선 건국에 반대한 계열이 나중에 조선의 지배층이 된다는게 아이러니이긴 합니다만)
이 논리대로라면 오늘날 새누리당과 더민주도 자웅동체가 되어 버리고(잠시만 이거 맞잖아?읍윽), 다른 나라의 정당들도 매한가지가 될 테니까요.

사실 전 개인적으로 "훈구"란 단어를 계속 쓰는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왜 사림은 그들 표현대로 써 주면서..관학파라는 명칭과 잘 섞어쓰지도 않고 그냥 사림이 부르던대로 쓰는지ㅎ
미필오수생 at 2016.01.19. 00:40

관학파들이 이미 정권을 빼앗긴 상태라 훈구라는 이름을 붙였고 사림은 조선 망할때까지 집권했기 때문 아닐까요? ㅋㅋ

조선이 멸망해도 그 후손들이 지주들과 배운사람들이고 그들이 역사를 집필했기 때문 아닐까요??

 

오늘날 새누리와 더민당 그 외 우리나라 정치정당들은 개인적으론 권문세족 신진사대부 관학 사림 과 다르다고 봐요 저들은 몇백년간 자신들의 가치 (친원vs 성리학, 개혁vs온건) 이라는 확실한 학문적 공유??로 묶여있던 집단이고

 

현재 대한민국 정당들은 보수냐 진보냐 라는 개념이 아니라 그 당시 권위자 중심으로 묶이는 느낌이라 ... 이번에 안철수 신당도 보면 공천못받을 기존 정치인들끼리 모여서 만드는게 하나의 예가 될수있다고 봅니다.

미필오수생 at 2016.01.19. 00:28

또 공존이 가능했다고 하시는데 대북파들 숙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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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도리 at 2016.01.19. 00:34
이론적으론 가능했죠. 실제로 초반엔 좀 그렇게 돌아갔구요(정여립 모반사건 등을 보면 또 의문입니다만)

근데 이론과 실제는 다르니까요..양당제면 상호견제가 가능하겠지~가 이론이라면, 자민당같은 케이스가 등장해 버리는 것처럼요.

대북파 숙청은 뭐..병크죠 그냥
미필오수생 at 2016.01.19. 00:42

그러니까 저는 저 붕당이란 개념자체가 억지로 만들어졌다고 보는겁니다 ... 2개의 가장 큰 특징들 가운데 한개가 모순점이 보이는데 그게 맞다고 억지주장하면서 가르치니 공부할때 자꾸 의문이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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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도리 at 2016.01.19. 00:47
ㅋㅋ글쎄요 꼭 억지라기보단..하나의 역사 프레임일지도 모르겠네요. 승자는 사림이었으니..만일 실학파가 승리하였다면 또 다른 관점으로 보고 있을수도 있지 않을까요
미필오수생 at 2016.01.19. 00:50

위에 말하신것 처럼 지폐만봐도ㅋㅋ 얼마나 인물들이 많은데 이황 이이 신사임당 조선을 거하게 말아드신 성리학자들 얼굴만 올라와있네요 기자조선을 숭배하셨던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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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도리 at 2016.01.19. 00:54
백원짜리 이순신 장군님...
일상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존재기에 제일 귀한 분이란 뜻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그렇게 따지자면 오백원은 "학"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필오수생 at 2016.01.19. 00:57

이순신 장군님은 당연히 인정합니다 동전은 괜찮은데 지폐가 왜 그 모양들인지 ... 남송이 멸망한지가 언젠데 성리학을 아직까지 들먹이셨던 양명학 고증학 양학이 들어왔을때도 주희니 주자니 개인적으론 임란이후 이순신장군님이 민심을 뒤에 엎고 나라를 새로 세우시는게 맞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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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도리 at 2016.01.19. 01:01
ㅋㅋㅋ신사임당 물론 존경할 만한 부분도 많습니다만..꼭 모자가 같이 출연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봅니다. 솔직히 독립운동가 한분조차도 자국 지폐에 없는 나라는 아마 드물겁니다.ㅋ
미필오수생 at 2016.01.19. 01:12

국부가 누구냐라는 논란이 끊이질 않고있는 나라라 근현대 인물들이 올라가려면 못해도 백년 이상은 지나야 될거같습니다 ㅜㅜ

새우 at 2016.01.19. 01:32

위에 덕술님께서는 밥그릇에 대하여 언급하셨으므로 저는 학문으로써의 붕당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성리학은 중국에서도 파벌이 나뉠 정도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학문입니다.

이를 가지고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파벌이 나뉘었는데, 이게 정치적인 입장으로까지 발전(?)을 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상호 존중했으나 이후 성리학에대한 자신의 입장이 권력과 직결되면서 사태가 달라지게 되는데요.

결국은 성리학이 정치적 목적으로 오염되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성리학을 이용하는 일로 사태가 점점 커져버렸고 자신들의 정치 수명을 위해 물불 안가리는 10선비들의 피비린내 나는 혈투가 되어버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요약하자면 탕수육을 찍어먹을까? 부어먹을까? 로 싸운거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이걸 왜 배우냐는 사실 민감한 문제입니다.

단지 존나 샌님들 병림픽 개오지고 ㅋㅋㅋㅋ 로 끝낼 문제로 보이나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붕당을 통해 집권당은 이익을 취했다고 하는데, 사실 이익을 취한건 세도정치떄의 이야기이고, 붕당정치가 이루어 진 시기는 왜란 이후 복구 시기입니다. 무엇보다 청백리를 중요시했고 재산을 탐하는걸 금기시했다고 하죠. 싸움의 이유는 [권력] 때문입니다.

 

권력이 즉 성리학이다. 이것이 슬로건으로 봐도 될 정도. 성리학하나로 죽고살았던 양반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성리학이 곧 진리였고 이점으로 권력을 획득하였다는 것은 매우매우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본인의 학풍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권력을 위해 싸웠단 것이죠.

 

마냥 잘못된 것이 아닌, 그 시대에 적당한 방법을 그 시대 사람들이 찾았다는 겁니다.

 

붕당이 부정적 평가를 받는 이유는, 양반으로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할 역사가가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 주된 이유,

한국 역사에서 양반은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거의 몰살당했고, 붕당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수혜 계층들이 평했다는 것이 요즘 학회의 주된 정론입니다. 어찌보면 성리학을 위한 신성한 투쟁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백성의 입장에서는 그냥 밥그릇 싸움으로 보였다는 거죠.

이 점에서 양반과 백성의 시각차를 연구할 수 있겠습니다. 이 관점의 차이 중 백성의 관점이 승리했고 그대로 전해내려오고 있구요.

 

붕당은 어쩌다 무심코 나뉘게 된 것이 아닌, 자신의 학풍을 고수하다 벌어진 싸움으로 변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합니다.

요즘의 정치 새태도 비슷하죠. 여당과 야당이 서로 자신의 정치관점을 고수하며 서로 대립하는 구도를 보이고 있고.

 

이런 여당과 야당의 개념이 역사적으로도 존재했는지, 그리고 당시 정치 세태가 어땠고 어떤 형태였는지를 배우고 당시 양반과 평민의 시각차를 위해 배운다고 압축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요즘 정치판과는 많이 다르지만..)

 

또한 붕당정치는 우선 조선의 가장 큰 정치 방법이었고 조선의 멸망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국가의 흥망성쇠를 배우기 위해 정치를 알아야 하는 것은 필수겠죠. 그 정치가 조선은 붕당이었구요.

 

사담이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이런 붕당의 부정적인 면만을 보여 타율성과 정체성론의 근거로 사용할 정도로 붕당의 인식은 추락했고 심지어 박정희 군부독재 시절에도 악평가를 받았습니다. 한국인은 남 잘되는 꼴을 못본다 한국인은 단합이 안된다 라는 요즘의 편협된 사고가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죠_

 

 

오수생님 질문을 정리하자면

 

상호 공존 = > 인조반정 이전에는 상호 존중했으나 사림 등용한 이후 숙종 이후에는 아예 없었던 일이 됨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 : 몽골 vs 우리나라

개혁파와 온건파 : 고려 뜯어 고치자 vs 조선 세우자

관학파와 사림파 : 여당 vs 야당

 

 

광해군에 대해서

 

오수생님이 말씀하신대로 2/3를 잃은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이 점은 지금 학계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다름아닌 광해군의 "적당한 시기를 보아 투항해라" 라는 말이 과연 진짜로 한 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지금 학자들 간의 의견이 다릅니다.

 

역사가 이덕일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상황에 조선군은 2일 이상 굶은 상태에서 전쟁을 치뤄야 했다. 강홍립은 이 상황에서 왜 바로 투항하지 않고 전쟁을 하였는가? 에 대해 논설을 쓴 적이 있습니다. 과연 광해군이 "적당한 시기를 보아 투항하라" 라는 말을 했냐는 것인데, 만약 저 말을 강홍립이 들었다면 왜 바로 가자마자 후금에게 투항하지 않았나? 라는 의문점이 생깁니다.

 

병력의 대다수를 잃은 강홍립의 투항은 [우발적] 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여기서 탄생했습니다.

 

교과서와는 다른 역사죠. 하지만 우린 교과서에 쓰인대로 중립외교를 외워야 합니다. 아직 논란중인 역사거든요.

언젠가 진실이 밝혀진다면 광해군 중립외교설이 없어질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대동법

 

이정철 교수의 대동법 연구 이후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명백한 역사왜곡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맞습니다. 광해군은 대동법 ㅗㅗㅗㅗㅗㅗ 했습니다. 이유는 궁궐공사. 무지막지한 토목 공사에 세금 걷히는 일에 차질이 생길까봐.

광해군의 대동법 수용은 매우 [수동적] 이었고 그나마 신하들이 땡깡부려서 겨우겨우 실행했다고 보면 되십니다.

 

당시 신하들 입장에선 어떻겠습니까?

왕이 말 안듣다가 말 들어주니 "우리 전하가 허락해주셔서 이렇게 좋을수가!" 가 되었겠죠 왕의 공으로 돌리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거기서 왕탓하면 죽을수도 있는데 왕이 해줬다 라고 공을 돌려야죠.

 

현재 역사는 광해군은 폭군으로 인식이 되어 있는데, 폭군한테 왕탓은 곧 죽음입니다.

 

신하들이 살려면 당연히 왕 덕으로 돌렸어야겠죠.

 

이 점과 대비하여 인조의 영정법이 다시금 재조명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자 마지막이네요

 

그리고 어디서 주워 들어서 진위파악이 안되는데 임진왜란 전 후금은 명과 조선이 교역을 해주지 않고 가뭄까지 겹치면서 천도를 2~3번이나 하면서

망하기 일보직전에 임란이 터지고 명이 쇠퇴기를 겪고 있을때 성장했고 후에 어차피 중원을 먹기 전에 뒷문단속을 철저히 해야하기 때문에 조선을 침략하는건 당연했고 또 식량도 필요했기때문에 침략할 이유가 있었다라고 누군가 하더군요

 

맞는 내용입니다.

 

명나라는 강성했습니다. 만약 이자성의 농민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후금이 어찌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누르하치가 명나라와의 공성전에서 사망했을 정도로 명나라는 끝까지 강한 나라였습니다.

 

강성한 명나라한테 후금은 그냥 하룻강아지였을뿐, 누르하지가 막 부족을 통일한 이후엔 가뭄이 닥쳤고 이후 후금이 막 맛이가려 할때였습니다. 근데  딱 임진왜란이 터져주었습니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쇠퇴한 명을 잡을 수 있었고 홍타이지가 재위하면서 조선 두들기고 명을 먹게 됩니다.

사담이지만 임진왜란 최대 수혜자는 1. 누르하치 2. 도쿠가와 이에야스 라고들 합니다

 

 

그리 말갈족 관련

 

아닙니다. 고대 시대에서는 지배층을 기준으로 그 나라는 누구 나라였는지를 정합니다

말갈이 우리랑 같이 살았기 때문에 우리민족이다 라는 말씀대로면 발해는 중국나라죠 구성원 70%가 말갈인이고 영토 대부분이 중국땅이었는데.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역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30%의 지배층이 고구려인들이었기 때문에 우리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는겁니다.

 

따라서 말갈 등 북방 민족은 우리 민족에 통합시키긴 어렵습니다.

 

 

 

※ 그외...

 

오수생님이 되게 역사의 논란점을 잘 짚어 내시는 부분에는 존경을 표합니다만...

요렇게 논란점을 짚어가다보면 상식은 넓어지나 수능을 못봅니다(.....) 우선 교과서 있는건 진리다! 라고 외우시고 역사적 논란점은 대학가서 탐구하셔도 늦지 않으니 잠시의 호기심은 잠깐 묻어두는 것이 현명합니다.

 

논란되는 부분이 뭐가 정답인지 헷갈리신다면 언제나 그냥 교과서 보시고 아 이게 정답 하고 외우시고,

대학가서 아 ㅆㅃ 그때 내가 외웠던게 거짓이었다니 하시면 됩니다 한국 수능 역사가 이래서 위험하조...

 

미필오수생 at 2016.01.19. 01:53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위에도 적어주셨듯이 관학파VS사림파를 여당VS야당이라고 비유해주셨는데 그럼 이때부터 붕당이란 개념을 사용하는게 맞지 않나요??

제가 궁금한건 붕당이라 칭 하면서 사림집권시기부터 새로운 정치체제인것처럼 배우는게 이상합니다.

여야가 나눠져서 하는건 이미 권문세족도 어떻게 보면 원이라는 백을 가지고있는 여당이고 신진사대부가 야당인거고

정치를 하게 되면 집권당과 야당이 존재하는게 당연한건데 그리고

공론과 공존이 특징이라면서 인조반정이후 공존이 지켜지짇도 않는 공존을 들먹이면서 배운다는게 참 의문입니다.

 

또한 광해군에대한 평가도 저렇게 실록에도 반대했다라고 나와있는 기록이 존재하는데 저런식으로 교과서에 서술되어있는지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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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c at 2016.01.19. 02:09

1. 국내 민족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국뽕적 해석입니다. 그거 세계에 들고가면 인정 못 받죠.

말이 좋아 붕당이지 실제로는 식민사학이라고 배척받는 "당쟁"이 맞는 말입니다.

혹자는 사상적 뿌리이나 실리, 이념적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그런 차이 역시 거의 없었습니다.

 

소위 붕당정치가 평화적으로 작용한 시기가 바로 '현종'대입니다. 그것도 바로 '상복' 논쟁(...)으로요.

물론 상복논쟁이 왕권의 정통성과 관련된 것이라고 하나 사실 논의 자체는 생산적이지도 학술적인 것과도 거리가 멉니다.

이 역시 숙종대에 송시열이라는 걸출한 키배러의 등장과 함꼐 가관의 길을 겪기 시작했고

정조대에 이르러서 규장각 가신을 키우던 게 바로 세도정치로 이어졌다는 것.

 

2. 광해군에 대해선 최근 거품이 걷히고 있습니다. 나무위키에 자세한 썰이 나와있습니다만.

실제로 광해군이 했던 개혁이란 것을 그 뒤를 이은 인조 대에 안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조 정권이 강경책만 쓴 것도 아닙니다.

말씀하신대로 후금은 교역만으로는 식량을 벌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침략해 온 것입니다.

광해군이 있었으면 막을 수 있었다... 라는 식의 설명은 이제 설득력이 사라지고 있죠.

 

3. 일단 한국사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로 한정하는 게 타당합니다.

이게 다소 애매합니다만 보통 역사라고 하기 위해서는 영토가 중요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문화입니다.

가령 터키의 경우 그 소아시아 지역은 과거 비잔티움 제국입니다. 그렇다고 터키인들이 비잔티움의 후손들이라 볼 수도 없습니다.

동아시아는 영토의 변화가 생각보다 잦지 않아서 영역으로 구분하기 쉬우나 유럽, 중동, 미국만 하더라도.

그럼 한국인들의 문화에 유목민들의 그것이 있느냐하면 이것도 참 귀속관계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럼 후대에 만주땅을 찾을 수 있느냐하는데 이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영토를 넓히기 위한 침략전쟁이라거나 합병 같은 건 국제법적으로 힘들기 때문.

가령 '간도'만 하더라도 이미 끝난 떡밥입니다만 우리가 영토를 주장할 권리가 없고

통일 이후에 분쟁이 될 수 있는 녹둔도의 경우도 역사적으로 우리 땅이지만 국제법적으로 삽질을 해서 러시아땅이 되어버린 경우며

특히 백두산 같은 경우도 원래는 우리 영토가 아니지만 중국이 반쪽을 북한에 양보해준 경우입니다(이걸 모르는 경우가 많더군요)

 

4. 여담이지만 소위 만주를 중심으로 반도에서 벗어나 대륙으로 뻗어나가자하는 고구려-발해 중심의 민족사관.

이게 진짜 민족사관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고구려나 발해가 강조된 불편한 진실은 일제가 세웠던 괴뢰국인 '만주국'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만주에 새로운 국가를 세우면서 당연히 과거 국가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고구려, 발해 등이 언급된 것입니다.

그 만주국은 사라졌지만 이게 일본이 섬나라를 벗어나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실험해보고자하던 야심찬 프로젝트여서인가

그 잔재가 대한민국으로 계승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대표적으로 민법). 고구려나 발해를 중시하는 사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냉정히 따지면 고구려나 발해가 중요한가... 라고 하면 사실 별 중요성은 없습니다.

그 정도의 전쟁이나 갈등은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것도 다소 일리가 없는 건 아닌 게

중국의 역사를 보면 그런 식으로 변방소국들과 전쟁을 벌인 게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이지요.

 

미필오수생 at 2016.01.19. 02:18
많이 배워갑니다 4번에 민법이 만주국의 잔재라고 하셨는데
대한민국법체계가 일본쪽이 아닌 만주국체계를 가져왔다는 건가요?
일제 통치체제가 만주국 법체계로 이루어졌다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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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c at 2016.01.19. 02:31

만주국이 일본의 괴뢰국인 이상 그것도 일본 쪽이 맞죠.

다만 만주국은 일본에서 나름 야심차게 준비하면서 나름 성심성의껏 연구하고 개발한 것들이 있었는데

기존 일본민법은 프랑스 민법을 베낀 데 반해, 만주국 민법은 꼼꼼한 독일 민법을 베낀 차이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제시대 역사를 보면 일제가 땅을 빼앗아 만주로 갔다고 알려져있지만 더 정확한 진실은

근대적인 소유권 체제로 토지제도가 개편되었고(사실 조선인 양반지주들은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만주 쪽이 기회의 땅이라고 알려지면서 적지않은 빈농들이 큰건 잡아보려고 건너간 것이죠.

그리고 만주국에서 조선인들의 비중도 적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일제패망 이후 다 말아먹었지만.

 

일본이 심심해서 만주 일대의 역사들을 연구한 게 아니죠.

만주국이 왜 괴뢰국이 아닌지, 신생국가로서 정당성을 지니는지 그걸 입증할 필요가 있었고

그 점에서는 고구려나 발해가 당과 전쟁했던 나름 독립적인 국가였다는 사실이 강조되었던 것입니다.

(광개토대왕비도 그런 과정에서 발견되었던 것이고 비문해석 가지고도 지금도 논쟁 중이지만 사실 일본 쪽 해석이 타당해보이죠)

 

이런 것들이 해방 이후에 "고구려나 발해"만 쏙 빼와서 우리 역사로 다룬다는 것이고

그 점에서 고구려나 발해만 다룰 게 아니라 여진족의 역사도 다뤄야하지 않느냐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킨 것인데

애시당초 고구려 역사에 그다지 큰 대접을 하지 않았는데도 일제에 지배당하면서 정략적으로 만주의 고대, 중세사가 발굴된 것에서

고구려와 발해만 빼왔기 때문에 이런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미필오수생 at 2016.01.19. 16:03
고구려와 백제가 혈통적으로 같다는건 유명한 이야기고
발해 건국후 왜에 고구려를 계승했다라는 문서를 보낸적도 있고 고려도 고구려를 계승하여 나라이름을 고려라했고 조선 정조때는 발해고라는 역사책도 발간했는데 부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치부할수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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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c at 2016.01.19. 16:21

그렇게 따지면 중국에 사대한 것부터 다 걸리죠.

왕건 같은 경우야 아예 그 조상이 중국 왕족이라고 했던 판인데요.

외교문서에서 어딜 계승했다... 라고 하는 건 그냥 수사적인 것입니다.

 

혈통론으로 가면 고구려 왕족과 유민 상당수가 당으로 끌려갔으니 고구려 역사는 중국사가 되어버립니다.. 도 있지만

일본에서 자기들이 백제를 계승했다(고대사에서 일본과 백제는 매우 연관이 깊죠)라고 하면서 이걸 고구려로 소급시켜

자기들이 대륙에서 섬으로 왔으니 만주까지 지배할 역사적 정당성이 있다고 말하면서

조선의 경우는 중국에 사대했으니 그런 자격이 없다라고 하면, 우리의 민족사관으로는 절대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미필오수생 at 2016.01.19. 16:25
그렇게 되는군요... 역사랑 정치는 이해관계나 너무 복잡하고 알아가야할게 많네요
그런데 사대관련은 그 당시 동아시아패권은 중국위주로 돌아갈수밖에 없었는데 사대에 걸린다는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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