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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인간폐지, c.s.루이스] 1. 상대주의의 범람을 예고하고 경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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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수 99
  • 2016.02.12. 02:14

이 책을 중학교 때 읽고, 고3이 되어 생활과 윤리라는 과목으로 수능을 준비한 후 다시 읽었을 때,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생활과 윤리는 20세기 활발히 논의된 응용윤리학을 교과목으로 편성한 과목이다. 근대 이성주의 철학에 대한 반동으로 현대철학이 태동하였는데, 그 중심에는 세계대전이 있었다. 이 두 번의 전쟁은 인간존재의 생존을 위협하였는데, 이에 따라 철학의 논의 대상은 구체적인 인간 삶의 문제로 넘어갔고, 이것은 응용윤리학의 탄생배경이 되었다.


세계대전은 그간 강조된 인간의 이성에 의구심을 남겼다. 그 당시 상대주의는 유럽에 범람했는데, 루이스 교수는 1941년에 BBC 방송을 통해 절대적인 가치 기준의 실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드러냈고, 그 방송은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인간 폐지]는 1943년 c.s.루이스 교수가 더럼 대학교에서 발표한 세 번의 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은 두 권의 영어 교과서에 담겨 있는 상대주의 철학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저것은 장엄하다라고 말할 때, 언뜻 보기에는 폭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폭포에 대한 말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상은 내 생각 속에는 '장엄하다'는 단어와 연관된 느낌이 있다 즉, 지금 나는 장엄한 느낌을 느낀다라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루이스는 이 교과서를 읽은 초등학생은 두 가지 명제를 믿게 될 것이라 지적한다. 첫째, 가치 술어가 들어 있는 모든 문장은 실상 그 화자의 감정 상태를 진술한 것이다. 둘째, 그러한 모든 진술은 중요하지 않다.


교과서는 '호화 유람선 광고'를 인용하며 그 상업적인 광고가 왜 나쁜지도 설명한다. 그러나 그 교과서는 훌륭한 문학작품과 함께 좋은 글과 나쁜 글을 가려낼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인간의 기본 감정을 불량하게 다룬 것이 왜 나쁜 문학인지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반면, 평범한 이성주의에 근거해서 모든 감정을 단순히 '허튼 것'으로 폭로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함정에 빠지게 된 이유는 그 교과서가 어떤 정서를 이성적이거나 비이성적이라고 말할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하기 때문이다.


[인간 폐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정서'라고 부르는 것을 과연 이성적이거나 비이성적이라 판단할 수 있는지를 논의한다. 여기서 '이성주의'를 비판하는데, 생활과 윤리에서는 '메타 윤리학'으로 소개되어 있고, 우리에게는 '비트겐슈타인'으로 친숙한 주관주의적 입장(subjectivism)을 논박한다. 가치에 대한 회의론은, 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가치에 대해서 충분히 회의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현대주의적 상대주의 또는 다원주의는 절대적인 가치 기준을 의심하지만, '허용(tolerance)'이라는 가치만은 절대 가치로 고수한다. [인간폐지]에서 지적하는 가치는 '공동체의 유익'이라는 가치인데, 다음과 같이 논지가 전개된다.


사실에 대한 명제에서 어떤 실천적인 결론을 이끌어낼 수는 없는 법이다. 이 일은 사회를 보존시킬 것이다라는 말에서 곧장 이 일을 하라는 말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사회는 보존되어야 한다라는 매개가 없다면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성을 '실천이성'으로 확장하여 사회는 보존되어야 한다와 같은 판단들을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이성성 자체로 인정하거나, 이러한 시도를 포기하고 가치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러한 본능이 있다."는 말에서 이 일을 해야 하거나, 마땅히 본능에 따라야 한다는 실천적 원칙을 도출해낼 수 없다. 그 자체로 의무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의무적인 것이 될 수 없다.


도덕의 진보는 옛것을 받아들이고 동일한 원리에서 새것으로 나아가는 식으로 일어날 수 있다. "네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유교의 도덕으로부터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기독교의 도덕으로 바뀌는 것은 참된 진전이다. 그러나 "왜 그래야 되는데?" "그것이 왜 좋은데?" "누가 그래?"와 같은 직접적인 공격으로는 어떠한 가치도 정당화될 수 없고, 종국에 모든 가치는 파괴될 것이다.


그렇다면 덕의 실천을 이끌어내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실천을 이끌어내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다. 플라톤은 머리가 가슴을 통해 배를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진리에 대한 지속적인 헌신과 지적 명예에 대한 민감한 분별은 정서적 도움 없이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잘못된 감정에 대비한 최선의 방어책은 올바른 감정을 심어 주는 것이지, 딱딱한 마음을 아둔한 머리의 방어책으로 내놓을 수는 없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은 완벽한 도덕철학자가 아니라, 비록 윤리에 회의적일지라도 가정환경 속에서 정직과 근면을 배워온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노력을 들일 필요가 있다. 좋은 것을 보고 들으며, 더 나아가 나쁜 것들과 비교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다. 간단한 봉사활동을 해보면서 실제로 그것을 느껴볼 수 있다. 또한, 부지런히 공부해서 잘못된 선전을 분별하고 올바른 가치를 수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고귀한 감정을 장려하고 권장해야 할 것이다. 

가장

뒤로 후퇴할 위험은 최소한 앞으로 나아갈 기회만큼 큰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가진 것을 개선하는 데 쓰는 에너지만큼은 지키는 데에도 써야 합니다._c.s.lew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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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촉
팔라촉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허나 5번째 문단의 내용이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이성주의를 비판함과 더불어 주관적의적 입장을 논박한다... 라고 써져 있는 것을 저는 '이성주의'='주관적의적 입장'이라고 이해했는데 이게 맞나요? 단순히 같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철학적인 소재라 그런지 글이 어렵네요.... 철학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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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5
2016.02.13.
가장
가장 팔라촉

6문단에 등장하는 실천이성, 이성성이란 단어 때문에 용어혼란이 빚어진 것 같습나다.

5문단의 요지는 '가치'에 이성적 잣대를 들이대어,  가치에 대한 회의론을 펼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가치에 대한 회의론은 가치의 객관성을 인정하지 않아 '주관주의'로 흐르게 됩니다. 6문단의 요지는 주관주의에서 절대 실천적인 명제가 나올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만약 실천적인 명제(당위명제, 명령법)가 나오기 위해서는 이성주의를 실천이성주의로 확장하여 가치의 객관성(이성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관주의는 가치의 객관성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특정한 가치(공동체의 유익)의 객관성을 가정하는 모순을 범합니다.

 

아니면 아예 실천적인 명제를 거부할수도 있는데 이러한 주관주의는 두번째 글에서 논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폐지를 의미합니다. '가치(윤리)' 대신 욕구(행복, 윈하는 것)가 실천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이것이 왜 진보가 될 수 없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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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7
201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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